작품소개
틈새로 엿본 부엌의 작은 역사
선사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고고학부터
압축 성장 근현대사 속 파란만장함까지
달그락달그락 들려오는 이야기들
한 권의 책은 나오게 된 저마다의 사연이 있지만, 사연이 일반적이지 않고 예상을 벗어나 관심을 끄는 경우가 간혹 있다. 이번에 나온 『역사와 문화로 보는 주방 오디세이』가 그렇다. 이 책은 다소 특별한 경로를 거쳐 잉태됐다. 저자는 대학에서 국문학과 국어학을 공부한 뒤 사회생활을 하며 동시에 몇 권의 책을 쓰고 번역한 사람이다. 어느 날 글로 먹고 사는 미래가 슬슬 불안해진 그는 장사를 시작하게 된다. 남대문 그릇도매상가에서 업소용 주방기물을 취급했다. 그릇도매상가 C동 3층에서 2012년부터 5년간 치열하게 이윤을 좇는 삶의 현장을 경험했다. 그릇만 판 건 아니었다. 냉장고와 가스레인지, 선풍기, 쓰레기통, 신발 등등 업소가 필요로 하는 온갖 기물을 다 거래했다. 몽상가였던 저자를 장사꾼으로 훈육해준 주변의 베테랑 상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장사꾼 DNA가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장사는 접었지만 현장에서 습득한 지식과 경험은 고스란히 남았다. 이것들을 그대로 두기엔 너무 아까웠기에 저자는 온갖 문헌을 동원하여 주방기물의 다종다양한 이야기들을 모으고 엮어내기 시작했다. 『역사와 문화로 보는 주방 오디세이』는 그렇게 나온 결과물이다. 책의 참고문헌을 보면 알겠지만 얄팍하게 공부하고 쓴 책이 아니다. 무려 5년이라는 시간이 오롯이 자료 조사와 원고 집필에 소요되었다. 장사한 기간까지 합치면 10년이다.
이 책은 주방이라는 공간 안에서 하모니를 이루고 있는 백전노장들을 다룬다. 젓가락과 숟가락, 칼과 도마, 냄비와 밥솥, 프라이팬과 밥상, 냉장고와 유리제품, 도자기 그릇과 스테인리스 그릇, 주방가위와 부루스타, 식기세척기 등 인간의 입에 들어가기 위해 식재료가 조리되고 차려지고, 치워지기까지에 소요되는 거의 모든 주방도구들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한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이었던 주방 일에 대한 논의와 그에 대한 역사적 비판적 논의도 이끌어가고 있다.
저자소개
저 : 장원철
서울시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동대학원에서 국어학을 전공했다. 『지혜와 통찰』 『구두장이 잭』 『백마디를 이기는 한마디』 등의 책을 출간했다. 옮긴 책으로는 『아주 작은 반복의 힘』 『데일리 필로소피』 『무엇이 관계를 조종하는가』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1. 젓가락은 어떻게 우리 곁에 왔을까
세 가지 식사법, 구역질은 누구의 몫일까? | 손은 이미 완벽한 식사도구다 | 공자, 손으로 밥을 먹다 | 젓가락은 신의 것, 손가락은 인간의 것 | 한중일 젓가락은 모양과 크기만 다를까? | 노인을 위한 젓가락은 있다 | 삶과 죽음의 경계, 숟가락
2. 요리의 최전선, 칼과 도마
최초의 주방도구, 칼 | 돌칼에서 시작된 안면성형 | 칼에 생명을 불어넣은 날 | 불맛, 손맛 이전에 칼맛 | 상처받을 수 있는 쓸모 있는 몸, 도마
3. 주방 그리고 남자와 여자
부엌일에서 오르가즘을 느끼는 여자는 없다 | 먹을 줄만 아는 남자, 아리스토텔레스 편 | 먹기만 하는 남자, 맹자 편 | 포르노그래피와 닮은 요리하기, 남자가 칼을 들 때 | 몹시 해괴망측한 제사법 | 주방으로 들어갔다 이혼당한 단카이 세대 | 맛의 원형질, 집밥 그리고 어머니
4. 따뜻한 한 그릇의 밥이 되기까지, 냄비
끓여먹는다는 것의 혁명 | 먹어야겠다는 욕망과 도구의 발명 | 냄비, 신석기시대 사회복지를 구현하다 | 물 요리 도구의 진화, 양숙과에서 타진냄비까지 | 물로 굽는 시대, 수비드 요리 | 밥 짓기에서 해방되다, 전기밥솥
5. 우리에게 없었던 프라이팬, 사라지는 밥상
볶음밥은 양식이었다 | 프라이팬은 지짐남비이올시다 | 김치볶음밥은 언제부터 먹었나? | 한때는 보석이었던 알루미늄 | 천덕꾸러기가 된 알루미늄 | 코팅 프라이팬과 원자폭탄의 공약수 | 밥상은 우리 주방에서 사라질까?
6. 불의 진화, 부엌에서 주방으로
요리는 머리로 한다 | 불 피우는 일은 만만치 않다 | 불꽃이 없는 신기한 화덕, 전자레인지 | 난방에서 해방된 부엌, 주방이 되다 | 또 다른 새로운 불, 전기레인지 | 나는 아내가 있어서 좋다, 아가 쿠커 | 정말 튀기는 걸까, 에어 프라이어
7. 추위를 꺼내 먹다, 냉장고
얼음은 부동산이었다 | 시원함에 대한 욕망 | 냉장고는 위험하다 | 냉장고는 도시 인프라다 | 냉장유통 연대기 | 일찍 온 미래, 우리나라 냉장고 | 방 안으로 들어온 김치독, 김치냉장고
8. 식기로선 여전히 낯선 유리
모래와 불이 만든 보석, 유리 | 종이와 유리, 동양과 서양의 운명을 가르다 | 흐르지 않는 액체는 어떻게 마법을 부리나? | 유리, 유교적 가치관과 충돌하다 | 유리, 제국주의의 첨병이 되다 | 끝없이 황금알을 만들어내는 거위 | 와인의 맛, 유리의 맛
9. 동양 연금술의 결정, 도자기와 그 밖의 그릇들
어떻게 해야 깨뜨리지 않고 옮길 수 있을까? | 도자기, 비단길을 열다 | 보석을 향한 열망, 청자를 만들다 | 빨가면 더 비싸다 | 그릇으로 차별하다 | 그릇이 무거우면 맛있다, 그리고 비싸다 | 스테인리스 식기는 첨단상품이었다 | 한국인은 청동기인이다 | 우리 집 제기는 옻칠일까? 캐슈칠일까? | 이 땅 위의 마지막 집이었던 그릇
[부록 1] 주방가위, 수원갈비, 부루스타
[부록 2] 스탕달의 연애론과 식기세척기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