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왜 인간은 인간이 아닌 존재를
사랑하게 되는 것일까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키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탐구
태어나는 불완전한 존재에 대해 사유하는 물음표
"후손을 낳고 기른다는 것은 개인의 일이자 인류의 일이고,
지적 작업의 결과로 빚은 인조인간을 키워가는 과정 역시
개인의 일이자 인류의 일이다."
★ 2024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 소설
호모 파베르를 통해 접근한
인간의 본성과 욕망
작가가 『완벽한 치즈 만들기』에서 시대정신 흐름 속에서 문제의식이라는 필터로 해석하고 문장으로써 작품에 녹여내는 데 주안점을 둔 개념은 호모 파베르(도구의 인간)다. 문학평론가 윤재민이 "자신이 처한 환경 속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자신의 의지나 목적으로 스스로를 재정의하는 인간 고유의 역량을 지칭하는 개념"이라고 호모 파베르를 정의한 바와 같이 표제작 「완벽한 치즈 만들기」를 비롯한 수록작 「달팽이 요릿집에서 백 미터」 「로맨스 연구 1, 2」의 등장인물들은 "각자가 추구하는 삶의 지평에서 제작하는 다양한 만듦새로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
「완벽한 치즈 만들기」의 화자인 나는 40년 동안 치즈 케이크를 만들어온 장인이지만 아들 선이 작곡을 하겠다고 떠난 이후 물려받을 사람이 없어 AI 판매 사이트에서 맞춤형 AI 로봇을 들인다. 치즈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6개월간 인큐베이터에서 키운 뒤 데려와 나의 인생이 담긴 치즈 케이크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한다. 그 과정에서 스무 살에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아들에게서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끼고 아들의 방을 쓰고 아들의 옷을 입은 치즈를 보며 씁쓸함과 슬픔을 느낀다. 어쩌면 나는 치즈를 통해 바라던 아들상, 나아가 나의 분신을 창조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윤재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기대했던 아들의 모습을 치즈에게 투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에게 완벽한 치즈 만들기는 단순히 자신을 보조할 AI 기계 제작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아들에 대한 회한과 평생을 매진한 장인 정신이 뒤섞인, 나의 인생 그 자체가 녹아들어간 분신 창조 행위나 다를 바 없습니다."
외골수적인 장인 정신 탓인지, 지극히 현실적인 탓인지 아들의 작곡을 이해하지 못해 서먹한 관계를 유지했던 나는 치즈에게 일을 가르치며 치즈를 이해하려고 노력한 만큼 아들 선을 이해하려고 했던 적이 있었는지를 반추한다. 작가 역시 이 글을 쓰면서 AI 로봇을 이해하려고 하는 만큼 내 아이를 이해하려고 했을까?라는 질문을 하며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달팽이 요릿집에서 백 미터」의 그는 독일 유학생활에 실패하고 학위도 받지 못한 채 돌아와 열패감에 빠져 지낸다. 나는 독일어 번역가로 처음 만난 그와 깊은 관계로까지 발전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모든 실패를 남 탓으로 돌린다. 하물며 그가 학위를 따지 못한 것도 나의 부재 때문이라는 핑계를 댄다. 그가 만든 민달팽이 수프나 원작과 창작이 뒤섞인 번역을 타인에게 강요하기에 그는 더욱더 고립된다. 문학평론가 윤재민은 이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그가 만들어 세상에 내보인 제작물은 하나같이 그저 인정받고자 하는 자의식과 욕망만이 넘실댈 뿐 타자에 대한 배려가 없습니다. 호모 파베르로서 그의 제작 역량이 세상과의 관계 맺기에 끊임없이 실패하는 이유입니다. 호모 파베르가 발 딛고 선 세계는 적자생존의 정글이 아닙니다. 나와 동등한 수많은 타자와 공존해야 하는 사회적 공동체입니다. 그 안에서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주변의 타인을 위한 만듦을 고려해야 합니다."
작가는 나와 치즈, 나와 그를 통해 관계는 누구 하나의 희생이나 헌신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고유성을 유지하되,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수평으로 맺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를 이야기한다.
모두가 평등한 곳
길 잃은 자들의 도시
「로맨스 연구 1, 2」는 보리를 중심으로 횟집 골목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와 산그늘 아래 자리잡은 낡고 오래된 호텔에서의 정착과정을 그리고 있다. 두 이야기는 타자의 낯선 공간를 통해 경계를 허물고 변화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박하지만 단단한 커뮤니타스적 순간을 만끽하"게 되는 것이다. 주변인으로서의 낯섦은 어느덧 친근함으로 바뀌고 개개인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열린사회에서의 희망을 꿈꾸게 한다.
"연애가 시작되는 것을 알고 시작하는 커플과 연애가 시작된 줄도 모르는 커플, 잃어버린 연애와 함께 사는 사람이 모두 함께 연애를 일구어가는 작은 도시. 사시사철 불철주야 연애가 생성되고 자라고 결실을 맺으며 오래 숙성되면 전설의 한 페이지에 기록되는 행운을 누리는 작은 도시."
작가가 보리의 시선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고 문화에 영향을 받기에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랑으로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사회임을 전하는 것이 아닐까.
저자소개
지은이: 방현희
2001년 〈동서문학〉에 단편 「새홀리기」로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2002년 『달항아리 속 금동물고기』로 제1회 〈문학 · 판〉 장편소설상을 받았다. 소설집 『바빌론 특급우편』 『로스트 인 서울』 『붉은 이마 여자』(공저) 『타오르다』, 장편소설 『달항아리 속 금동물고기』 『달을 쫓는 스파이』 『네 가지 비밀과 한 가지 거짓말』 『세상에서 가장 사소한 복수』 『코인』과 부산국제영화제 북투필름에 선정된 『불운과 친해지는 법』 등이 있다. 청소년 소설 『너와 나의 삼선슬리퍼』, 산문집 심리치유 우화집 『아침에 읽는 토스트』 『오늘의 슬픔을 가볍게, 나는 춤추러 간다』 『우리 모두의 남편』 등이 있다.
2019년 『함부로 사랑을 말하지 않았다』로 전숙희문학상을 수상했다.
목차
완벽한 치즈 만들기
달팽이 요릿집에서 백 미터
로맨스 연구 1
로맨스 연구 2
해설 : 호모 파베르들의 커뮤니타스 _윤재민(문학평론가)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