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문학과 비평이 삶의 기예임을 믿고자 하는 분들과 함께하고 싶다."
동시대 비평과 이론의 가장 전위적이고 특별한 성취
계간 『문학동네』 30주년을 기념하여 비평 앤솔러지 『크리티컬 포인트문학, 비평, 이론』을 펴낸다. 1994년 창간되어 2019년 100호를 기준으로 혁신호를 발행한 계간 『문학동네』는 2024년 겨울호를 펴내며 3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어떤 권위에도 구속되지 않는 문학의 자유로움을 위해, 어떤 편견도 없는 열린 문학을 위해 (...) 최대한으로 긴장하겠"(서영채)음을 약속했던 10주년,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세월호 이후 한국문학이 가야 할 길"을 타진하며 "앞으로의 이십 년을 세월호 사건과 같이 또다시 출발하겠다고 다짐"(류보선)했던 20주년, 그리고 이번 30주년을 맞아 "우리가 문학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으로 앞으로도 독자분들과 함께하며"(인아영) 새로운 지도를 그려나가기를 계간 『문학동네』는 약속하고 또 희망한다.
다양한 시와 소설 그리고 내실 있는 대담을 싣는 것은 물론 계간 『문학동네』는 한국문학장에 참신한 에너지를 불어넣고 값있는 담론을 만들어내는 비평과 이론의 장 역할 또한 충실히 수행해왔다. 그중 혁신과 변화를 꾀하며 더욱 가열한 행보를 이어온 100호 이후에 발표된 비평과 이론 중 12편을 엄선하여 『크리티컬 포인트』로 엮었다. 지난 오 년은 팬데믹과 기후 위기, 문학장을 비롯한 예술장 내부의 여러 사건을 겪으며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찬 담론이 전개되었기에, 그 변화의 경로와 매듭들을 살피는 작업이 유의미하리란 판단하에, 오늘날 인문?사회 담론의 지형을 살필 수 있는 작은 가이드북을 마련했다. 동시대 문학/시대와 끈질기게 대화하는, 바꿔 말해 비평가가 제각기 사랑하는 방식들을 통해, 독자들은 비로소 연결되는 비평의 몸과 점묘화처럼 서서히 드러나는 비평의 얼굴을 아쉬움 없이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개진되는 비평을 고찰하고 이해하는 자리인 동시에 다양한 이야기가 은성할 수 있는 하나의 통로가 되기를 바란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제각기 낡고 고루한 사유에 저항한 흔적이다. 지난 삼십 년간 문학계의 다양한 흐름 속에서 계간 『문학동네』가 치열한 이론적 분투와 비평적 갱신을 위한 시도를 꾸준히 해왔음을 상기하며, 동시대 비평과 이론의 가장 전위적이고 특별한 성취들을 이곳에 모았다. 한 권으로 엮였으나 깊이 들여다보면 서로 경합하는 글도 있고, 다른 현상을 다루면서도 뜻밖의 에움길에서 마주치는 글도 있다. 그 마름질되지 않는 이질성의 파열과 마찰을 모두 기꺼이 드러내겠다는 데에 이 책의 야심이 있다. _오은교, 「책머리에」에서
"그들의 ○○이 참담히도 불가능해지는 시점으로부터 우리의 ○○이 시작된다."
문학이, 비평이, 이론이
『크리티컬 포인트문학, 비평, 이론』은 총 4부 12편의 글로 구성되었다.
1부의 주제는 글쓰기 시스템과 비판의 메커니즘이다. 이 책을 여는 첫 글인 인아영의 「비평과 사랑」은 상반된 진단을 불러일으키는 우리 시대의 비판적 글쓰기의 문제적 상황을 분석하며, "비판을 행위자들의 구체적인 실천이 아니라 주어진(주어지지 못한) 구조적인 전제로 이해"(28쪽)하기 때문에 문학비평 또한 언제나 작품에 대한 야박하거나 과장된 평가표에 국한되었다고 진단한다. 이에 저자는 이념과 담론과 체험이 교차하는 그 어떤 것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행위자성의 중간 지대를 마련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 이소의 「비평의 몰락을 한탄하지 않는 방법」은 그 어떤 비평 이론조차도 상품이 되는 포스트 크리티시즘이라는 시대의 난제를 돌파하려는 시도를 선보인다. 저자는 대상과 재현 간의 관계를 통해 생성되는 주체의 자리를 거리-몰입과 정지-운동의 사분면으로 펼쳐 보이며 비평사를 네 결절 지점으로 고찰한다. 전통적 비판 이론의 한정적인 모순을 포함하면서도 그것을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는 사유의 힘이 남아 있는 한, "비판-이후는 없"(68쪽)을 것이다. 윤원화의 「글쓰기를 위한 시스템 설계」는 글쓰기의 지평을 매체라는 틀로 파악하는 글이다. 창작의 가능성을 매체의 발전에 후행하는 기록시스템으로 파악하는 저자는 레자 네가레스타니의 소설 『사이클로노피디아』의 증례를 통해 2000년대식 저자성을 묻는다. 석유를 채굴하고 운송하고 거래하는 화석연료의 흐름을 둘러싼 끝없는 전쟁의 장이 오늘날의 글쓰기 판이다. "잉크처럼 검은 기름"(77쪽)에 잠긴 채 역구성되고 "역사는 종결되지 않고 변주"(89쪽)되어 "저자는 언제나 느린 재생과 재구성의 장소로 기능"(91쪽)할 것이다.
2부의 주제는 독자성과 일인칭 나의 서사 실험으로 오토픽션 장르를 비롯한 일인칭 서사와 출판시장의 에세이화 경향을 고찰한다. 김경태의 「수치심의 글쓰기와 퀴어의 사랑/윤리」는 "게이 주체성의 가장 고유한 정조는 수치심"(101쪽)이라는 관점하에, 낙인찍힌 성애 경험을 밀도 있게 드러낸 김봉곤의 작품들을 읽어내는 글이다. 저자는 그의 작품과 일련의 사건을 경유하여, 지난 삶의 실패를 부축하며 계속되는 뒤처진 미래,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열리는 사회적 자유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오은교의 「벽장의 문학과 사생활의 자유」는 낙인찍힌 섹슈얼리티 표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예술작품에 관한 다양한 논란들이 자유주의적 안보 레짐과 사생활주의의 한 작동임을 밝힌다. 성적 실천이 드러났다는 이유로 비난받는 타인의 삶은 결단코 정치적 자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거나 글쓰기의 자유에는 한계가 있다는 원론과 수세를 넘어서는 일이 필요함을 저자는 재삼 강조한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바라는 것은 사생활 보호가 아니라 사생활 자유이기 때문이다."(134쪽) 한영인의 「자아 생산 장치로서의 에세이」는 정교하고 엄밀한 형식을 갖춘 시문학에 비해 언제나 낮은 위상으로 취급받아온 에세이 장르의 역전이 이루어지는 오늘날의 문학 시장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분석을 표방한다. 저자는 "형식에 대한 반감과 투명하고 명료한 전달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에세이가 "오늘날 소설의 생산과 독법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지"(165쪽)는 않은지 질문하고, 나아가 일상 낱낱의 자원화를 부추기는 작금의 압력 속에서 새로이 창발 가능한 형식을 암중모색해본다.
사랑하면 왜 각이 생기나. 매 순간 새롭게 쓰이는 문학을 읽는 체험은 애초에 알고 있던 우리의 정체성과 욕망을 재확인하는 데 그칠 수 없도록, 그것을 다른 각도에서 낯설게 느끼고 의심하고 성찰하도록, 지금까지의 우리와는 다르게 사고하고 행동하고 존재하도록 만든다. 인간이 수십 수백 년 동안 물어왔던 문제를 계속 묻게 하고, 한순간 만족하더라도 이내 새로운 답을 요구하며, 매번 다른 각도로 스스로와 세상을 이해하게 한다. 그리하여 어떠한 사랑도 대상과 자기 동일적으로 환원되지 않게 한다. 사랑하면 각이 생긴다. 그것이 비평가가 사랑하는 방식이다. _인아영, 「비평과 사랑포스트 비평과 동시대 한국문학 비평의 논점들」(45쪽)
3부의 주제는 몸의 이론과 퀴어 정치미학이다. 조선정의 「비평하는 몸」은 페미니즘과 푸코의 통찰을 그 배경으로, 1990년대 미국에서 폭발한 퀴어 이론이 근대성 비판 이론이자 주체 담론으로 변화를 거듭한 비평사를 톺는다. 저자는 "포스트퀴어(postqueer)를 상상하더라도 그것은 새롭다기보다는 관습적"이며 "퀴어 이후가 도래하더라도 예측할 수 있는 방식은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시작, 끝, 이후를 잇는 선이란 결국 몸이 지나가면서 차이를 통해 생겨나는 것"이기에, "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우리는 다 알지 못한다."(194쪽) 정민우의 「불가능한 퀴어 이론」은 북반구의 학술적 기획이자 구매력 있는 시장의 상품이 된 오늘날 글로벌 비판 이론의 처소를 직시하게 만든다. 유수하게 잘 배운 거기의 그들이 말하고 쓰면, 빈곤하고 벙벙한 여기의 나머지가 받아 적고 옮기는 제국주의적 구조의 강화. 그러나 학계의 공고한 엘리트주의나 위선마저도 없었다면, 오늘날 광범위한 독자군을 확보한 이 퀴어 이론의 번영은 가능할 수도 없었다는 통찰은 뼈아프다. 김건형의 「가족도 미래도 없이 친밀하게」는 근대의 야만성을 극복하려는 시도로서의 돌봄이 새로운 주체의 운영 윤리로 제안되는 오늘날 한국사회를 반영하는 작품들을 분석한다. 저자는 안온한 돌봄의 커먼스를 비트는 난잡한 퀴어 장례식의 섹슈얼리티와 글로벌 케이팝 팬덤에 내재된 파괴적 자기 발견과 불온한 환대의 정동을 면밀히 살피며, 청년들의 불안정한 연대와 그 안에서 불현듯 생동하는 미약한 자기 배려의 계기를 발견해낸다.
4부의 주제는 비인간, 동물, 공생자 이론으로 기후 위기 시대에 가장 긴요한 비판 이론으로 부상한 신유물론의 경향을 탐색한다. 진태원의 「인류세와 민주주의」는 논란을 본질로 하는 개념이라 할 법한 인류세 이론의 정치적 지형을 개괄하고, 이 인류세라는 개념이 인종, 계급, 젠더의 적대를 가로질러 실현될 수밖에 없는 근대적 계몽주의 마스터 플롯과 어떻게 절합되는지, 궁극적으로는 더이상 거주가 불가능한 것으로 선언되는 이 지구 위의 생명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상을 행하고 당해야 하는지를 뜨겁게 묻고 대답한다. 강지희의 「구멍 뚫린 신체와 세계의 비밀」은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치명적 바이러스를 친족으로 삼게 된 오늘날, 해당 바이러스를 비롯하여 다양한 이질적 종과 행위자들의 지위와 가치가 어떻게 문학적 재현을 통해 설득력을 얻는지를 살펴보는 글이다. "끝내 인간에게 동화되지 않는 건조하지만 활기 넘치는 사물성을 발견"하는 저자의 면밀한 읽기 앞에서 "개인의 깊이나 비밀을 담보하는 내면성을 읽어내는 일은"(329쪽) 더이상 이전만큼 중요하지 않게 체감된다.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임태훈의 「기후 소설(Cli-fi)을 어떻게 읽고 쓸 것인가?」는 기후 소설이라는 비교적 새로운 문학 장르의 역사적 성취를 탐문하는 글이다. 이상기후 현상의 두드러진 발생과 함께 절멸의 공포가 고조되는 상황이지만, 소설 자체가 근대적 자본주의의 산물인바, 어떻게 "십억 년의 철학이나 문학이 가능할까?"(340쪽) 저자는 재난의 인과를 따르는 인간 영웅의 도래를 복창하는 기존의 내러티브가 더이상 유효하지 않기에, "생태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시적 언어의 창안은 필수적"(348쪽)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비평가는 감춰진 진실을 강박적으로 복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점 사이를 연결하거나 건너뛰고 가로지르며 의미의 지도를 만드는 사람일 수 있고, 거기서 더 나아가 아예 길을 잃고 알 수 없는 곳을 끝없이 헤매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 그런 맥락에서, 퀴어 비평가는 비평의 대상을 찾아 경계를 허물고 가로질러가는 주권자가 아니라 차라리 허물어짐과 가로지름을 당하는 몸을 경험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거기서부터 쓰여진 것 못지않게 쓰여질 뻔한 것이나 차마 쓰여지지 못했을 것을 길어올려 "모든 의미가 똑같아지지 않는 곳"(이브 세즈윅)으로 흘려보냄으로써 동어반복이 아닌 차이를 만들어내는, 자기로 회귀하지 않으며 자기 바깥에 존재하는 사람. _조선정, 「비평하는 몸」(188쪽)
저자소개
인아영
문학평론가. 『문학동네』 편집위원. 201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평론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평론집 『진창과 별』이 있다.
이소
문학평론가. 『문학과사회』 편집 동인. 202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평론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윤원화
시각문화 연구자, 비평가, 번역가. 저서로 『1002번째 밤2010년대 서울의 미술들』 『문서는 시간을 재/생산할 수 있는가』 『그림 창문 거울미술 전시장의 사진들』 『껍질 이야기, 또는 미술의 불완전함에 관하여』 등, 역서로 『광학적 미디어: 1999년 베를린 강의예술, 기술, 전쟁』 『기록시스템 1800 · 1900』 『포기한 작업으로부터』 『사이클로노피디아 작자미상의 자료들을 엮음』 등이 있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에서 부드러운 지점들을 공동 제작했고, 부산비엔날레 2022 온라인 저널 땅이 출렁일 때를 기획 편집했다.
김경태
연세대 매체와예술연구소 연구원.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영상예술학과 박사과정 졸업.
오은교
문학평론가. 『문학동네』 편집위원. 2018년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평론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한영인
문학평론가. 『창작과비평』 편집위원. 2014년 『자음과모음』을 통해 평론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평론집 『갈라지는 욕망들』, 산문집 『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 가는군요』(공저)가 있다.
조선정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저서로 『제인 오스틴의 여성적 글쓰기』 『페미니즘: 차이와 사이』(공저), 『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공저), 역서로 『오만과 편견』 『노생거 사원』 등이 있다.
정민우
사회학자/퀴어 연구자. 로욜라시카고대학 사회학과 조교수. 저서로 『자기만의 방』이 있다.
김건형
문학평론가. 『문학동네』 편집위원. 2018년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평론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평론집 『우리는 사랑을 발명한다』가 있다.
진태원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연구교수. 『황해문화』 편집주간. 저서로 『을의 민주주의』 『애도의 애도를 위하여』 『스피노자 윤리학 수업』 『알튀세르 효과』(편저), 『포퓰리즘과 민주주의』(편저), 『스피노자의 귀환』(공편) 등이 있다.
강지희
문학평론가. 한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학동네』 편집위원.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평론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평론집 『파토스의 그림자』가 있다.
임태훈
문학평론가. 성균관대 국문학과 조교수. 인문학협동조합 총괄이사. 『문화/과학』 편집위원. 저서로 『검색되지 않을 자유』 『우애의 미디올로지』, 공저로 『SF 프리즘』 『블레이드 러너 깊이 읽기』 『기계비평들』 『한국 테크노컬처 연대기』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가 있다.
목차
책머리에
1부 글쓰기 시스템과 비판의 메커니즘
비평과 사랑포스트 비평과 동시대 한국문학 비평의 논점들 | 인아영
비평의 몰락을 한탄하지 않는 방법 | 이소
글쓰기를 위한 시스템 설계『사이클로노피디아』, 또는 현재의 기록시스템을 재정의하기 | 윤원화
2부 독자성과 일인칭 나의 서사 실험
수치심의 글쓰기와 퀴어의 사랑/윤리 | 김경태
벽장의 문학과 사생활의 자유소수자 시민 가시화의 욕망을 둘러싼 한 쟁점 | 오은교
자아 생산 장치로서의 에세이 | 한영인
3부 몸의 이론과 퀴어 정치미학
비평하는 몸 | 조선정
불가능한 퀴어 이론 | 정민우
가족도 미래도 없이 친밀하게돌봄의 생명 정치와 난잡한 친밀성들 | 김건형
4부 비인간, 동물, 공생자 이론
인류세와 민주주의 | 진태원
구멍 뚫린 신체와 세계의 비밀신유물론과 길항하는 소설 독해 | 강지희
기후 소설(Cli-fi)을 어떻게 읽고 쓸 것인가? | 임태훈